진정한 믿음을 상처받기를 감수한다 | 운영자 | 2009-01-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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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만난 후 사도바울의 삶은 완전히 바뀝니다. 그는 성령과 함께 주님을 위해 몸 바쳐 일합니다. 그런데도 그는 이 일들을 잘 해냈다고 자랑하기보다는, 상처받기 쉬운 자기 모습을 여러 곳에서 시인합니다. 로마서 7장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는 자기 몸 구석구석에서 솟구쳐 오르는, 자신과의 격렬한 싸움을 고백합니다. 때로는 이 싸움에서 져,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자기 모습도 보여줍니다. 사람이 아무리 잘나 보이려 애써도, 결국 죄인이며 죄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는 점을 사도 바울은 자기를 예로 들어 보여줍니다. * 자신을 열어 보이는 것이 왜 힘들까? 일반적으로, 자신을 열어 보임으로 겪는 고통보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탄로 나지 않게 꽁꽁 가둠으로 겪는 고통이 훨씬 더 큽니다. 자기에게 어떤 힘든 일이 있는지 아무도 모르게 숨기며 교회에 다니기보다는, 차라리 교회 게시판에 그 문제를 털어놓아 모든 성도가 그 문제를 위해 함께 기도드리게 하는 편이 훨씬 더 낫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신앙인이 자기를 열어 보이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 자기 이미지가 실제의 자신과 다름이 드러나는 순간, 사람들이 자기를 우습게 여길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인 듯싶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자신과 같거나 비슷한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5:16)고 말씀합니다. 서로 자기 죄를 고백하지 않는다면, 그를 위해 무슨 기도를 드려야 할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상처 받기를 거부하면, 치유할 수 있는 기회뿐만 아니라, 성장하고 강해질 수 있는 기회마저 잃어버리고 맙니다. 진정 건강하기를 원한다면, 자기가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영적- 감정적으로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려야 합니다. 자신을 열어 보여 상처받기를 감수한다면, 다른 사람과 연결고리가 만들어집니다. 영적 위대함과 종교적 파멸의 차이는 자기 죄를 인정하고 상처 받기 쉬운 자가 되느냐,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자기를 감추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 완벽주의라는 함정 상처받기 싫어하는 사람은 대개 완벽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노력합니다. 이로써 그 사람은 참으로 고독하고 아픈 길을 걷습니다. 그들의 우선순위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실패와 비웃음, 비난을 피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완벽한 사람이 되면, 누구도 자신이나 자기 행동에서 허점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용납과 사랑과 소속감을 얻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완벽은 이생에서 그 누구도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고지입니다. 인간은 유한하고, 인생도 유한합니다. 완벽주의는 우리가 유한하다는 사실을 부인합니다. 게다가 너무나 성과지향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맺는 관계를, 그 관계의 결과물인 ‘용납될 만한 행동’보다 덜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건강한 믿음은 과정지향적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결코 온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목표로 삼을 수는 있습니다. 역량이 부족하기에 우리 스스로는 온전해질 수 없으며, 그래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 행위나 그 결과에 상관없이, 우리를 자녀로 받아주십니다. 건강한 교회는 모든 성도를 있는 모습 그대로 용납합니다. 그들이 무엇을 했든 하지 않았든 그것은 한 생명을 구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곳에는 오직 사랑과 소망을 바탕으로 상대방을 용납하는 믿음만 있을 뿐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성경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거듭 말씀합니다. ‘용기를 내라’는 뜻을 지닌 이 말씀은 인간이 상처받기 아주 쉬운 존재라는 고백 아래 더욱더 힘을 얻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비밀이 아무리 작다 해도, 언제까지나 숨겨질 수는 없습니다(마 10:26-28). 그렇게 가려진 채 우리 자신을 스스로 해치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때가 되면 모든 것은 환히 드러나고 밝혀질 것인데. 인간은 누구나 상처를 주고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왔을 때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을 믿는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자신을 열어 보임으로써 상처 받기를 감수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 줌으로써 거절당할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쓸 능력이 있거나 믿음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것은 사람에게 용납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이 크고 중요한 일입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용납되었다는 것을 알면, 사람들에게 일시적으로 거절당하는 것 정도쯤이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건강한 믿음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불완전한 자아를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게 합니다. 에베소서 6장 16절은 믿음을 방패로 쓰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대로 우리는 요란하게 꾸민 겉모습 뒤에 자신을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의 방패를 견고히 들고 서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열어 보임으로써 상처받을 각오를 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의 믿음이 참된지 아닌지 알아보고 싶다면, 그가 세상적인 가치관으로부터 거절당할 위험을 얼마나 기꺼이 무릅쓰는지를 살펴보면 됩니다. 그것이 신실한 정도를 가늠하는 표지입니다. 건강한 신앙인은 자신의 고통, 실패, 죄, 감정적 약점을 시인합니다. 자기만큼 완벽하고 유능한 사람도 없음을 보여 주려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잘못했을 때는 언제든 잘못을 시인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 도움을 청할 수 있습니다(스티븐 아터번/ 잭 펠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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